어른에게 있어서의 정서적 기반 등
- Ramblings K
- Mar 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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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Nov 24, 2020
어른에게 있어서의 정서적 안정의 기반
내가 남들에게 영혼 없는 리액션한단 소리 진짜 자주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게 남들에게 받아본 피드백중에 그게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한테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소리를 듣고 상처를 받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학창시절 그리고 대학때까지 되서도 남들이 나를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거의 받아 본적이 없다. 심지어는 내 얼굴이 몇살로 보인다, 너는 어느 어느 연예인을 닮았다, 나에게 이상한 별명을 지어 준다거나 이런 아주 단순한거 말이다. 그만큼 남들이 그냥 나를 보고 딱히 떠오르는게 뭐도 없거니와 내가 그렇게 살갑게 사람들에게 속마음 오픈하는것도 서툴렀고 남들도 나에게 그렇게 평가를 내릴 만큼 정신력과 시간을 소비를 할 필요가 없었던거 같다.
솔직히 내가 남들에게 내적으로 가장 힘들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도 이거였다. 나에 대해서 뭐 그렇게 깊은 관심을 보여주는 않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내가 내적으로 힘들다 한탄을 한다는게 내 기준에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만성 우울증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입장일것이다. 자신이 평생 소외된 사람이라는 생각을 어느정도 한다.
이게 어느정도 맞는것이 내가 이제서야 확실히 알게 된거지만 나같이 감수성이 많고 내성적인 사람은 어차피 수박겉핥기식의 인싸식 인간관계로는 어떠한 만족을 느낄 수 없다. 나는 진정한 소수의 ‘내 사람’을 만들어야 되는 사람이다. 진정한 인싸라고 하더라도 세상 모든이들을 자신의 온 진심을 다해 대하는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다수의 친구를 모으고 같이 놀 수 있는것이다.
인싸나 아싸나 모두에겐 소수의 인원, 막말로 불알친구 같은, 맘을 툭 까놓고 내 속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정서적 지지기반이 필요 하다. 아싸였던 내가 한 큰 실수는 나는 소수의 정서적 지지 기반층에게도 내 모든 속내를 안 꺼냈다는거다. 이 사람들이 내 유일한 친구들인데도 말이다.
인싸나 아싸나 이게 안 되면 평생 고독이 무서워진다. 인싸 같은 경우 그래서 진심을 다 전달하지도 않을 그런 껍데기뿐인 가십, 자기 과시성 얘기를 만들어 내서라도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 하고 사람에게 항상 둘러 싸여야 안정감을 얻는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뭐 아싸는 그게 안 되니 그냥 항상 외로움을 타게 된다.
친구에게 모든걸 다 털어 놓고도 어떠한 수치심같은걸 느끼지 않는 내성적 사람은 고독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걸 20대 중반에 알아차린거 같다. 알아차렸다고 해서 그걸 얻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때 이렇게 해야 겠다 목표가 설정 된거 뿐이다.
상처의 치유 – 훈련으로 무뎌지는 것
병은 소문내고 다니면 빨리 낫는다 이게 내 관점에서 보면 소수의 사람에게 이걸 털어 놓음으로써 내 내적의 고통을 덜어주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내 가정사, 실연, 학창시절의 트러블 내 삶에 있어서 일어난 비극들 이걸 난 이제서야 술자리 안주거리로 삼고 비꼬고 농담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해본적이 없는지라 표현 능력도 떨어지고 내 상처 또한 정말 깊어서 말을 하면서 그 치유되지 않은 감정도 같이 올라왔다.이러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거부반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불쾌감이 들 수 밖에 없다. 안 그래도 주제가 아주 무거운데 말하는 사람이 막 울먹인다고 치면 보는 사람이 어떻게 해줘야 할지 당황을 하게 되는것이다. 나도 이런걸 어느정도 직감 했기에 나는 성당 다닐 시절 간증글 같은거 몇개 써서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거나 피정 같은 진중한 자리에서 촛불키고 내 얘기를 사람들에게 얘기하거나 이런식으로 연습을 했다. 내 얘기를 하는것에 대한 수치심이 너무 컸기에 이걸 넘어서는 방법은 소수의 사람도 아니고 큰 숫자로 잡아야 할 꺼 같아서였다. 이런 분위기에선 사람들이 내 얘기를 어느정도 수용해준다. 워딩만 잘 쓰면 듣는 이도 같이 울어줄 수 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치유 한다.
서양권에는 Alcoholics Anonymous 같은 알콜이나 이런 약물 의존하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 그룹으로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나. 이 목적이 1)내 적 고통을 나눔으로써 남의 반응을 통해 공감을 받고 내가 안정을 얻는것 2) 나 자신이 내 과거에 대해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연습하고 훈련하는것 이런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수치심을 넘어서는건 남들한테 떠벌리고 다니는 것이다.
어차피 삶에서 당한 불행은 대게 두가지인데 하나는 나같이 남에게 휘둘리면서 살아서 남에게 당한 상처이고 둘째는 내가 안정된 상태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을 했는데 결과가 참패였던거 내가 스스로 자초한 선택에 의한 상처다.
약물, 술 의존 지경까지 갈정도로 심신이 다쳤으면 (이 그룹은 나도 포함) 어차피 그냥 남에게 당한 상처가 압도적으로 큰거다.
그래서 당신 잘못이 아니다 이런 말을 귀에 닳도록 들어야 한다. 그렇게 불행해진것이 근본적으로 그들의 잘못이 아니면 수치심을 느껴서도 되는것이 아니다. 내가 자초한게 아닌데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가해자가 쪽팔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게 역설적으로 떠벌리고 다니면서 피해자라는 얘기를 해도 사람들이 손가락질 안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개인의 레벨에선 생각을 함에 있어서 자정능력도 있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이게 큰 군중으로 바뀌면 좀 얘기가 달라지지만. 개개인이 내 상처를 들었을때 내가 피해자라서 불쌍하고 위로해주고 싶단 생각 의외로 진짜 잘한다. 우울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것이 당신을 다치게 한 가해자 같은 사람들은 인구로 따지면 소수에 속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의 이야기를 꺼낼 경우 당신편을 들어준다. 진심으로 들어준다.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용도
게다가 아주 아이러니 한 점이 내가 삶에서 당한 불행을 어느정도 비슷하게 당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나같은 소수의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당연히 물론이고 그나마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들도 겪어본 시기가 달라서 그렇지 다 겪어본것들이다.
인터넷에서 죽음에 대한 밈 (유머짤) 이걸 많이 생산하고 이용하는것도 결국 내면적 상처를 입은 유저의 치유 목적이다. 죽음이나 슬픔 고통의 이면에는 항상 뭔가 반대되는 이런 아이러니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게 일반인들에겐 유머로 받아들여지고 그걸 포스팅하는 아픈 사람 입장에선 이렇게 자신의 슬픔에 공감을 얻는 그런 이치라고 생각한다.
페북에 내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것도 나는 페북을 사용하는 용도가 아주 정확하기 때문이다. 난 여기선 마치 사이버 캐릭터다. 페북 유저들은 나를 실제로 만날 일도 없고 나도 괜히 일을 만들어서 그들을 일일히 만날 수고도 하지 않은거고 유저들이 나를 보면서 떠올리는것은 내 프로필 사진, 내가 하는 헛소리 댓글, 내 뻘글, 진지한 글 이거 뿐이다.
나는 내 과거가 내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게 아닌걸 아니까 내가 거기에 무뎌지려고 공허한 인터넷에 불특정 다수에게 떠벌리고 다니는거다. 일종의 훈련 같은거다. 나는 말로 하는것 보다 어쩌다 보니 글을 쓰는게 편해진거 뿐이다. 알게 뭔가. 인터넷 상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내 실제 모습이 아닌데 말이다.
인터넷 공간은 인터넷 공간이라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받는다 쳐도 나는 그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 이런걸 받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받는 위안은 현실에서 받는 위안 보다 작다. 여기서 댓글 50개를 받는다 쳐도 사람 두명한테 포옹을 받는것 보다 덜하다. 사람은 사람을 실제로 만나서 교감해야지 받는 감정의 잔상이나 위로의 강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자기애 문제 진짜 심한 사람들은 SNS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관심 구걸 하지 않나? 인스타 같은데 가면 진짜 널려 있다. 나는 현실로 만나지 않은 사람은 그냥 판단을 유보하는 편인데 인스타에 그런 사람들은 그냥 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수준이라 판단 유보 자체가 안 된다.
그거 정말 비효율적인 짓이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일반인 보다 더 칭찬을 받아서 이게 무슨 찬사 수준으로 받아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이 한 사람한테 너 일 잘한다 칭찬 한번 받으면 그 여운이 한 길게 6개월 남는다고 치면 그런 사람들은 무대위에서 천명 관객에게 기립 박수 받고도 3일 이상 못간다. 어차피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수준이다. 근데 현실에선 그렇게 안 가능하니까 SNS로 간다 그래서 인스타 사진 올리면 댓글 500개 달렸다고 좋아라 한다.
인터넷 댓글 그리고 카톡 채팅에서 오해가 많이 생긴다. 다 일상 생활 속에서 짬짬히 대화를 하는거다. 다른거에 몰입하고 있다가 문자 하나에 내 머리와 신체 모두 이입을 못한다. 사람을 앞에 두고는 그렇게 몰입할 수 있는데 그 몰입력이 문자 소통에서는 떨어진다. 어차피 실제로 타인에 대한 감정 없는 사람은 문체에서도 안 읽힌다. 안희정이 보낸 카톡에선 감정이 1도 전달 안 된다. 얘는 타인에 대한 감정적 이입이 전반적으로 안 된다. 이재명 같은 경우는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그냥 병적이다. 나는 진짜 얘는 반사회적 성향 있다고 본다. 얘는 감정적으로 차분할때 사람한테 보낸 문자 예시를 읽어 본적이 없다.
당연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소통할때 문자가 전달 할 수 있는 감정은 어차피 제한 되어 있다. 우는 이모티콘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정말 눈물 흘리는거라고 동일시 하는 사람 없다. 웃는 이모티콘이라고 해서 입 찢어 지게 웃는걸 연상을 하면 받는 입장에선 기분이 좋겠지만 결론적으로 동일시하면 그건 착각이다. 문자보단 목소리 듣는게 훨씬 감상이 다차원적이고 만나서 보고 대화를 하면 더 감상의 깊이가 깊어진다.
현생에 충실하면 솔직히 SNS에 소홀해진다. 사람을 진짜로 만나는것이 내 삶에 더 풍요로운 감정들을 주고 잔상 또한 길게 남는다. 쓰다 보니 이건 비판도 아니고 마치 욕쟁이 아짐 잔소리 같다 ㅋㅋㅋ 관종러들 너들 두고 말하는거야 ㅋㅋㅋ 솔직히 이전엔 이런 사람들 보면 화도 나고 어느면에선 참 무섭기도 하고 또 내면을 알고 나선 슬프기도 했는데 요새는 그냥 보면 우습다. 그냥 딱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 보면 그 이질감 그게 참 웃음 포인트러고 해야 하나. 이게 어찌보면 삶의 아이러니로 인한 조소라고 봐야 하나.. 암튼 심란 하다 심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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