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의심하라

나는 정말 혼자서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내 불안의 근원을 찾아낸 사람이다. 나는 이거 자랑스럽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다.

5살때 내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었으면 했다.장사에 정신이 팔려서 내가 덤프트럭에 치이는 줄 목격을 못했다.

12살때 호주에 건너 왔을때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노력을 해서 5학년에 친구 여럿을 만들어놨는데 그걸 다 없애 버리고 나를 타지에 뚝 떨어진 말 못하는 벙어리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이모 집 풀장 옆에 딸린 모터 돌아가는 창고방 아니면 70년도 되는 벌레가 떨어지는 낡은 창고 안에서 살게 만들어 버렸다.

14살때 같은 한국애 한테 은따를 당했을때 가해자 보고 내 언사에 대해서 사과를 해서라도 친구사이를 유지하라고 종용했다. 이때 속으로 씨발년이라고 처음 생각했다.

17살 거식증으로 기력이 다 바닥났을때 200 칼로리 짜리 에너지 바를 어떻게 잘라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때 “제인아 밥먹을래? 아니면 말고.” 그러면서 태연히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밥을 꾸역꾸역 쳐먹었다. 정말 둘이 짐승 같이 보였다.

20살때 내가 2학년 대학 등록비 손을 못 벌리겠어서 휴학한다고 하니 일부러 못 내키는척 “그래도 계속 공부해야지..알았다. 어쩔수 없네. 진짜 기특하다.” 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고 또 씨발년 그렇게 되뇌였다.

24살 정신병동에서 나는 그냥 죽음만 생각했다. 지금 죽을 것인가 10년 후에 죽을 것인가. 10년을 기다리면 내 엄마가 그새 나를 또 다시 정신병동에 집어 넣을것이다. 중증 우울증에 조현성 에피소드란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말 안들으면 나를 쉽게 집어 넣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머릿속에서 그런 상상을 하던 시절 엄마는 내 핸드폰을 숨겨서 면회 시간때 주며 자기 자동차가 망가졌으니 보험 클레임을 대신 걸어 달라며 스시 5박스를 내앞에 풀어헤쳤다. 난 다시 이건 진짜 상종 못할년 이구나 생각했다.

엄마가 씨발년이라는 생각은 무의식속에서 더 강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나는 내 엄마가 씨발년이라는걸 계속 체험하고 반복 훈련으로 내 고정관념을 깼다.

30살때 7년만에 다시 상담받으러 갔을때 선생님이 굳이 나를 따라 같이 상담을 하겠다며 문을 박차고 들어 오는 엄마를 회유해서 나가게 만들었다. 선생님이 내 은인 맞다. 내 의심에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내 엄마가 원인이고 둘이 같은 방에서 어떤 상담을 하더라도 차도가 없을꺼라고 했다.가족을 다 데리고 그룹 상담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내가 제일 우선이라고 했다. 엄마는 나 같이 치료를 시작하면 자기가 못견뎌서 중간에 자살을 할 수도 있다고 그랬다. 엄마를 고치려는건 헛수고라고.

그리고 미친듯이 심리학 서적을 뒤적여 보니 엄마는 정말 사형선고를 언도 받은 불치병 환자 맞았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둔 사람들의 케이스가 너무 무궁무진 했던거다.

그래서 스카이캐슬 김주영이 영재보고 부모 혐오를 부추겼지 않나? 김주영은 잘못된 시기에 애를 일방적으로 부추겨서 그렇지 어차피 그건 일어날 일이었다. 그런 남자애는 자기가 알아서 의심해서 무너져 버리고 확신을 얻은 후 어차피 부모한테 쌍욕하고 부모랑 인연을 끊는다. 그럼 엄마는 자살할지도 모른다.

 
 
 

Comments


  • White Facebook Icon
  • White Twitter Icon
  • White Pinterest Icon
  • White Instagram Icon

© 2023 by Design for Life.

Proudly created with Wix.com

Thanks for submitting!

Rambling's Blog is a Personal Blog with a focus on Mental Health Recovery & Philosophy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