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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과도기 그리고 친구들 2

포스트가 어찌가다 산으로 가서 다시 이어 쓴다.


앞의 포스트에선 마음 맞는 아이들끼리 결국 뭉쳐서 친구들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마음이 맞는 배경에는 가족사를 빼놓을 수 없다. 내가 고등학교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나를 놓고 봤을때 우리 모두의 부모들은 강압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고 정서적으로 덜 성숙한 케이스들이었기에 아이들의 삶의 질은 항상 뒷전이었다.


이렇게 비스무리한 환경에 놓여있어 우리는 결국 다 같은 인간이구나라고 착각을 하겠지만 우주의 섭리에는 불공평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사람마다 정신력, 체력이나 신체적 역량 다 다르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삶의 궤적을 놓고 봤을때도 미성년인 아이에게 일어나는 불가항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도 (힘 없는 아이의 눈에는 적어도 그렇게 비춰지지 않겠는가) 다 미묘하게 다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날 수록 저마다 미묘하게 다른 삶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개인의 수용력 또한 다르다. 체력이나 정신력이 어린 나이부터 더 빠르게 소진 되었다면 더 빨리 친목 서클에서 빠지게 된다. 특히나 내가 서술한 어려서 부터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일방적으로 자처해서 그 서클에서 빠지길 희망한다.


이에는 두가지 원인이 존재하는데 첫번째는 내 심신이 정말 지치고 지쳐서 나락으로 떨어졌기에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상황이고 두번째는 내 삶의 궤적이 이제 더 이상 그 서클에 존재하는 친구들과는 겹치지 않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학창시절 즐거움보단 내가 과거에서 느꼈던 불편함에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둘 다 경험했다. 뭐 20대 가장 힘들었을때는 내 자신이 인간관계까지 감당할 사람이나 되겠나 싶어서 내가 자처해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고 칩거를 했다. 20대 얘기는 하도 해대서 마치 내 블로그 자체가 20대 한탄 블로그가 될 노릇이니 쓸 필요는 없겠고.


이 포스트에서 중점을 두고 싶은건 복합 PTSD와 같이 나르시시스트적 학대를 받을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고쳐나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냐는 점이기 때문에 두번째 상황을 이야기 하고 싶다.


같은 나르시시스트적 학대 피해자 선상에 있더라도 앞에서 서술했듯 사람들은 다 다른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 다른 사건들을 만나기 때문에 모두가 다 같은 속도로 학대 가해자에게서 연을 끊고 회복을 하는건 아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서 벗어나서 나르시시스트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평생 부모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는 경우도 있고 삶에 있어서는 변수란 수도 없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걸 다 서술할 수 없다.


회복을 하다가 보면 소위 통찰력이란게 안 생길 수가 없다. 특히나 나와 같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학대에서 벗어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어떤 단계에 와있는지 확연히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은 경우는 학창시절 친구가 계속 정체된 상태에서 가족에게서 경제적으로 계속 뜯기고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는거 조차도 부모의 훼방으로 못하는 걸 보게 된다. 어려서부터 이기적인 부모 아래 자란 탓에 불만을 토로를 하는거 자체를 못하는데다가 자신의 삶은 괜찮은데다가 가족은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하다고 모든걸 부정하며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엄두 조차도 못내는 상황이다.


그래서 과거의 친구가 이런 굴레에서 못 벗어나는걸 확인하게 되면 친구인 나로썬 어떤것도 못 한다는 절망감에 빠지고, 왜 내가 보는걸 얘는 못 볼까라는 답답함이 계속 쌓이다가 보면 친구에 대한 미움으로 까지 발전한다.


도움을 준답시고 친구의 가족을 욕을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본인 인생 자체가 방어기제 자체로 다 둘러 쌓여있는데도 체력은 또 좋아서 그게 감당이 되니까 상담을 찾아갈 정도로 문제가 드러나는것도 아니다. 그러니 하루에 4-5시간을 자고 항상 수면 부족에 부모랑 부딪치기 싫어서, 그리고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밖에서 왠종일 시간을 허비하는걸로 보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건 나는 꼰대가 맞고 내적인 사람이라 활동량이 적은걸 감안하면 내가 이 친구에 대해 이해하는게 전적으로 옳은건 아니다. 활동적인 사람들이 있고 밖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조각들을 한곳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어떤것도 내것으로 만들수 없다. 꼭 돈을 벌고 커리어를 쌓는게 아니더라도, 기술을 배우고 공부를 하는것 게다가 내 웰빙을 위한 취미 마저도 긴 시간을 축적해야 그 빛을 보게 마련이다.


본인보다도 더 독한 (toxic)한 환경에 노출된 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한탄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고 이로써 어떠한것도 내 정서나 개인적 성장에는 도움이 안 되는데다가 본인 조차도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게 고역이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손을 내밀때 마다 꾸역꾸역 받아주면서 본업에 집중할 시간을 그런 이들에게 내어주는건 전혀 미래지향적인 사고가 아니다. 또 이런 상황에 이골이 나면 여행을 한다면서 내 현재를 도피하는데 여행을 통해서 취하는 이득이 장기적으로 무엇이건 간에 현재를 감안 하면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시기를 계속 늦추는 결과만 낳게 되는것이다.


나는 이미 이걸 20대 후반에 겪었고 후폭풍 또한 거세게 맞았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걸 겪고 있는 친구에게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걸 잘 알고 있다. 본인 또한 가족이라고 어떻게 끌어 안고 있는 이 울타리 밖을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 30 중반이 되도록 자기가 굳게 믿어왔던 가치관을 하루 아침에 다 던져버리고 마치 내가 걸었던 불밭길을 걸으라고 종용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본인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건 철저히 본인의 깨달음과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서 비롯 되는것 이기에 타인인 내가 어떻게 개입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또 정서적인 회복을 하면서 생겨나는 자신에 대한 확신,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밝히게 되는 습관, 타인과에 있어서 경계선을 확실시 하는 습관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친구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면 안 된다는걸 알게 된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 덕에 친구가 정말 말이 안되게 먼 거리에서 별 흥미도 없는 걸 하자해도, 아니면 영 싫어하는 자기 친구들을 주렁주렁 달고 와도 다 포용이 되었지만 회복이 되면서 자존감이 올라가면 이런게 더 이상 허용이 안 된다. 그래서 만남을 간소화 한다거나 아예 안 한다거나 조건을 이것저것 붙이게 된다.


이렇게 서로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나는 나대로 피로하고 친구는 왜 만남이 그렇게 이전과 달라지는지 의아해 하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선 그냥 세월이 흐르면서 그렇게 연이 끊어지는게 자연스럽다고 본다. 회복을 하는 단계에선 내가 어떤 태도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 끼어있었으며 내가 부모에게 당한 나르시시스트 적인 학대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여러번 둘러보게 된다. 하지만 문제적이었던 과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려면 내 주변의 사람들도 어쩔수 없이 다시 보여지게 되고 청산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것이 우정이 영원하길 바라는건 마치 복권에 당첨되길 기원하는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눈으로만 세상을 이해 할 수 밖에 없는 이런 단점을 지닌 인간으로써 상대방이 인간으로써 어떻게 성장을 하고 있는 모를때 서로의 관계가 불변하길 바라는건 마치 신기루를 쫒는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같은 속도로 정신적 성장을 한다거나 아예 서로 정체된 정신을 공유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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