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과도기 그리고 친구들
- Ramblings K
- Mar 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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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Nov 20, 2020
지금 내가 내 인생의 과도기이다.
살다보면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가는 느낌이 들고 이럴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이렇게 본다.
어렸을때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애들이나 아니면 부모가 진짜 무책임하고 안하무인에 아이들 마치 돈줄로 여기는 자식농사꾼 이런 사람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끼리 뭉친다. 일종의 동지애이다. 집에서 억압받고 답답한 마음은 미칠거 같은데 학교가 유일한 탈출구이고 그러니 맘이 통하는 애들끼리 뭉친다. 이심전심이다. 이런 애들은 행동하는거나 말투나 몸의 경직됨, 각성 상태 또한 진짜 잘 맞아 떨어진다. 신체적 체력은 안 같아도 말이다. 그래서 어느 애는 결국 더 먼저 무너진다. 이걸 번아웃이라고 한다.
각성 상태가 워낙 높아서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자라면 애들이 미친듯이 뭐에 몰두하려고 하고 바깥에 나가서 뭘 하려고 하고 뭐 무슨 이유가 됐던간에 몸을 놀리는걸 본능적으로 익힌다. 몸을 계속 놀려야 잡념이 없어지고 머리가 깨끗해지는 느낌이 드니까. 그래서 체력이 저질이면 먼저 나가 떨어진다.
나는 글을 씀에 있어서 의식의 흐름대로 쓴다. 윗 문단을 설명하려면 나와 내 친구에 대한 역사를 써야 한다.
내가 속했던 하이스쿨에 그룹의 친구 중 힌두계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외동으로 자란 아이는 소위 발랑까진 짓을 많이하고 지딴에 반항을 엄청 하더니 결국 결혼해서 캐나다로 가버렸고 그렇게 부모에게서 도피했다. 집에 신전 같은걸 두었는데 딸이 생리를 하면 신전 앞에서 얼씬거리는거 아니라고 혼내고 그랬다면서 엄청 화를 낸기억이 난다.지금은 기독교로 개종까지 했다. 지금 보면 그 아이도 출구가 결혼밖에 없었고 나르시시스트 부모 밑에서 크면 경계성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 장애가 될 가능성이 참 크다.
군장교 아빠 밑에서 자란 여자애 또한 그렇게 터프하게 남자처럼 강하게 자길 단련시키는걸 좋아했다. 16살때 득달같이 가서 제일 면허를 먼저따고 스릴있는것을 즐겼으며 부모 몰래 이리 저리 피어싱에 문신도 많이 하고 성인이 되자 오토바이 면허도 땄다. 대학을 다른 도시로 가서 연락 끊겼는데 대학때는 엄청나게 술만 퍼대고 미친듯이 놀고 그랬던 사진들 페북에 뜨더라.
알콜 의존 아버지에 엄마 또한 경계성 밑에서 자란 여자애. 얘가 제일 먼저 나가 떨어졌다. 허약 체질이라 몸이 못 견뎠고 그래서 학교를 관뒀다. 한 4년 못 봤는데 얘 집은 정말 난장판이었다. 그 사이에 엄마는 풀타임 공부를 했고 외가의 도움으로 살아갔다. 이 여자애 엄마랑 나는 일을 같이 해서 그 엄마와 꽤 같이 붙어 있었는데 정말 무책임하고 자식에게 보챘다. 게다가 재혼에 대한 두려움은 있는데 남자에 대한 관심은 너무 무궁무진 해서 매일 집에 남자를 데려오니 여자애가 그걸 견딜수가 없어서 남자를 급하게 사귀어서 나와버렸다. 이집 둘째 딸도 결국 대학때 무너졌다. 이 애는 그나마 안정을 찾긴 했는데 자기보다 어린 남친에 경제적으로 꽤나 많이 의존한다. 학생의 신분이 좋은지 공부에 공부만 하고 파트타임일을 한다. 아버지가 옥스퍼드 의대 출신이라서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는것인지 아니면 학생이 주는 그 불확실하면서도 뭔가 나중에 길이 열릴꺼 같단 기대감 그런 분위기에 취해 있는건지 전혀 알길이 없다.
나의 엄마는 헌신하는척 하는 무책임한 나르시시스트 엄마였다. 외동딸인 나는 14살때 한국인들에게 은따를 당하고 지금 언급하는 아이들과 뭉쳤다. 이건 필연적인거나 다름 없다. 15살때 거식증이 왔다. 2년을 굶었지만 17살때까지 살아 남았고 다시 어떻게 미친듯이 인터넷 게시판이나 보고 미친듯이 공부하며 그렇게 무식하게 버텨서 대학까지 들어갔다.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첫학기를 쌩돈을 주고 유학생 처럼 다니는 바람에 집안이 거덜날까 덜덜 떨면서도 말이다.(엄마가 하도 돈돈돈 지랄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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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 밑부터는 그냥 20대 얘기 반복이네
게다가 1도 모르고 들어간 건축학과에서 진짜 모욕이나 다름 없는 강사들의 언사를 들어가면서 그 와중에 그냥 무식하게 맨몸으로 바위치기 식으로 그렇게 디자인 익히고 첫학기때 제적 당했을수 있었던걸 (그때 120명으로 시작해서 한학기 끝나고 70명 남았는데 거기서 25명이 낙제가 나왔다 디자인 클라스에서) 2학기 성적 반영해서 1학기 성적을 패스로 전환해준다는 얘기에 방학에도 나가서 도면을 그리는 연습을 했다. 거기 청소 아줌마나 나를 보고 귀신인줄 질겁했다.
그래서 결국 1년은 어떻게 마쳤다. 근데 다음해에 돈이 걱정이 되는것이다. 벌써 엄마가 돈을 거진 2만불을 부어줬는데 저렇게 무식하게 공부할 엄두도 안나고 비자 해결 될때까지 내가 돈벌어야겠단 생각 들어서 일년을 쉬었다. 이때 진짜 안해본것이 없다. 카페 알바, 펍 알바, 과외 주에 6탕 뛰고 간간히 부모 청소도 도와주고. 우리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가 아니고 엄마가 닥달하고 나를 식충이처럼 몰아세울까봐 였다. 학교는 일년 쉬니까 머리 안돌아 갈까봐 그때 고전소설 한해에 200권 다 채워서 읽었다.그냥 내 자신을 갈아 넣었다. 내 삶에 위기가 온거 같은데 책이 읽힐리가 있나.안 읽히면 자책하면서 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2학년때 한학기 또 무식하게 했는데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그렇게 공황이 왔다. 2학년 2학기때 진짜 어떤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학교가기 싫은데도 억지로 가서 풀어 놓고 그렇게 밤낮을 학교에서 있었는데 정말 14주 채우고 뭐가 되던간에 개똥이던 뭐든 이걸 강사 앞에서 그리고 다른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생각을 하니 세상이 망할거 같은 생각이 드는것이다. 그 비난조의 목소리들 나를 비웃는 얼굴들이 그려지니 끔찍했다. 그러면서 내면이 붕괴됐고 공황장애가 왔다. 14주째 월요일인가 그때 모델이랑 도면 다 학교에 제출하고 그 다음날 가서 발표하는거였는데 엄마 차를 얻어타고 모델이랑 도면 ..내 맘에 들지도 않는것들을 학교에 들고가서 제출하는척 하다가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그러는데 머리가 새하얘지고 현기증이 나고 다리가 풀리는걸 경험했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엄마한테 가서는 제출했다고 거짓말 하고 그 다음날 학교를 안 갔다.최종 발표를 사람들 앞에서 해야하는데 안 간거다. 그래서 결석 때문에 낙제 했다.
나는 죄책감이 주는 공포에 정말 신음했다. 내가 이렇게 무너져 버릴꺼라곤 예상을 못했다. 뭐든지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머리도 몸도 안 따라주는거다. 그러면서 또 책이라도 읽어야 겠다 그렇게 전념했다. 그때 카프카, 도스토예브스키, 카뮈, 니체,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서머셋 모옴 그때 다 그때 접했다. 저 책들만 유일하게 나한테 위안이 되었다. 그럴것도 그런것이 저 사람들의 삶이 나랑 별반 다른게 없는것이다. 저걸 읽었을땐 불안과 공포 때문에 머리가 그걸 술술 받아들이지도 않고 강제로 넣은거나 다름없는데도 그 감상을 할때 느낌이 너무 강렬한거다.
또 그 와중에 파트타임으로 건축 사무소라도 가서 뭔가 발을 걸쳐놔야 내가 나중에 학교에 돌아가더라도 수월할꺼 같아서 거기서 일을 했다.쥐꼬리 같은 돈이라도 벌어서 집에서 사람구실 한다는 건 보여줘야 하니까. 솔직히 나는 고등학교때 이미 부모에 대한 애착이 사라져 버렸다. 부모에게 의지하면 내가 나중에 못살아 남을꺼 같아서 악착같이 한것도 있다.
이때 나는 시드니에서 공연도 미친듯이 보러다니고 탈출구를 나름 찾았다. 1년동안 진짜 몇십개를 봤다. 나는 진짜 뭐든지 집요하게 무식하게 한다.한국에 처음으로 여행가서 진짜 내 맘대로 다녔다.돈이 없다고 엄마한테 울면서 더 보내달라고 성화도 내봤다. 한국 물가 비싸긴 하다. 내가 거기가서 명품 쇼핑한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종로쪽 레코드 도매상에서 시디 한 20장 사고 휘뚜루 마뚜루 바를 로드샵 로션 몇개랑 분식 사먹고 그런거 밖에 없는데 몇천불 그냥 날라가더라.암튼 나도 나만의 반항을 그때 적극적으로 했다.
학교에 돌아가서도 뭐 내색은 안 했다. 낙제 한거 알까에 대한 두려움이 진짜 컸다. 나는 그래도 남들 앞에서 순탄하게 살아 온것처럼 얘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컸는데 이게 자연스레 안 된다. 그러니 뭐 맨날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다. 대학때 사귄 사람들을 제일 많이 경계했다. 그땐 내가 그냥 모두를 경계할때다. 그리고 뭐 다시 돌아가서 또 한학기 마치고 삼학년 막학기때 또 터졌나. 암튼 기억도 이제 가물가물하다. 머리가 그걸 차단을 하는거 같다. 기억을 꺼집어내는것도 솔직히 지금에서야 가능하다. 진짜 엄마가 “졸업은 해야지 안그래?” 그 말이 안 하면 너는 그냥 그 자리에서 목졸라 죽여 버릴꺼다 라는 뉘앙스로 들렸다. 그렇게 할꺼 같이 시늉하는 사람이긴 하다 솔직히.
그리고 간신히 졸업했다 정말. 한국 선배 언니들한테 도움 요청을 엄마를 통해 해서 그렇게 막판에 미친듯이 만들어서 넣고 졸업했다. 참 그 언니들은 내 삶의 은인이다. 졸업을 하게 해줘서 고마운게 아니라 너무 흔쾌히 도와줘서 그렇다. 난 사람들이 그렇게 손을 내미니 아무 생각없이 도움을 건네줄수도 있다는걸 그때 처음 인지했다.
그리고 디자인 3년짜리 학위는 정말 하나도 도움 안 된다. 건축가로 일하려면 5년을 마쳐야 한다. 2년을 더해야 하는데 진짜 이건 할 수가 없다. 심신이 너무 지쳤다. 그래도 남들 하는 속도는 따라 잡아야 하니 또 도시계획에 지망했다. 그리고 뭐 두말할거 없이 또 파트타임일 하면서 돈 벌면서 공부해야지 이게 졸업식이랑 과제 제출날이 겹칠정도로 그렇게 쉬지도 않고 공부 시작한거다.
공부? 안 된다. 당연히 안 된다. 내가 대학 다녔을때 전문이 뭔지 아나? 과제 제출 할때만 되면 공황이 왔다. 그래서 제출할거 쓰레기통에 넣고 도망나온다.미친짓이다. 근데 공황장애가 오면 어떻게 되는지는 앞서 이미 한 포스팅을 질러놨으니 보면 된다. 삶의 위기가 온거 같은 두려움이 들어서 맨날 도망갔다. 공황장애가 사람을 이렇게 비이성적인 짓을 하게 한다.
난 진짜 영특하고 똘똘하단 소리를 들었다. 근데 20대때 내가 했던 기이한 행동을 보면 무슨 히로뽕 먹은 실험실 쥐새끼 같다. 불안 때문에 내면이 붕괴되면 내가 하는 모든선택이 결과적으로 저렇다. 그리고 계속 제적 위기 간다. 제출 시기 놓쳐서.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미친짓이라 교수한테 가서 사정하고 날짜를 더 받아서 늦게 제출한다. 그래서 70점 받을꺼 늦게 내서 60점 받고 50점 받고 그렇게 넘긴다.
막학기때 대인기피가 왔다. 이제 내면이 붕괴되다 못해 몸도 붕괴되었다.몸까지 동면에 들어갔다. 당연하다 내가 너무 싫어서 나는 일부러 잠도 안 잤다. 과제하면서 안 써지면 자야 하는데 졸린 내가 너무 혐오 스러워서 잠도 안 자고 밥먹는 나를 상상하니 그게 혐오 스러워서 다이어트 콜라랑 초콜릿 하나 이렇게 먹었다. 내가 나를 혐오해서 내가 나를 고문하고 죽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난 일베의 마인드 너무 잘 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붕괴되면 인터넷에서 연예인 쟤 정말 능력도 없어 보이는 애들 저기 나와서 머리 좋은척 잘난척하면 정말 혐오 스럽다. 그래서 댓글로 분출한다. 연예인 상대로 악플달거나 이러는거 보면 그럴수 밖에 없다. 쟤가 어떻게 저렇게 다 가질수가 있나 그게 말이 안 되고 용납이 안 되는거다. 생각하고 볼 수 있는 시야가 좁아지다 못해 닫혀버린다. 근데 쟤네들도 어쩔수 없다 안 보이는데 맹인 된지 1년차라서 맨날 부딛히다 보니 이제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자기 지팡이 여기저기 다 휘젓고 부시고 다닌다.
그렇게 맘껏해야 나중에 몸하고 정신이 완전히 붕괴가 된다. 이게 계속 진행되면 결국 사람이 자살한다.
일베들은 자살 안 하고 세상 탓하는게 정체성이자 성격인 애들이 대부분인데 얘네들은 자아 성찰로 자괴감에 휩쓸려 자살까지 가는 그릇은 못되고 그냥 한 평생 주변 사람 들들 볶고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기생하다가 술, 도박 이런걸로 크게 사고 치고 황천길 가는거 같다.
나도 그렇게 자살직전까지 갔다. 근데 무서워서 못했다. 살고 싶은 욕망은 컸는데 이렇게 몸도 마음도 어떤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걸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오진으로 8주간 입원해 있었는데 이때는 정말 오만 생각이 다 떠오른다. 근데 이 좁은 시야로는 살아서 나갈수 없다. 다 그냥 순응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면서 어떤 죄를 저질렀길래 그러면서 다 맞춰본다. 나태했던 죄, 열심히 하지 않았던 죄, 책임을 다 성실히 하지 못해본 죄, 이모 불법으로 낙태하러 갔을때 그때 내가 도와줘서 그런걸까? 아 그렇구나. 나는 정말 죄인이다. 그러면 이대로 그냥 순응하면 나는 완전히 망가져서 마치 조현병 환자 취급을 받겠지. 엄마는 나를 자기 이모가 자기 형제들한테 당한것처럼 맘에 안 들면 정신병동에 맨날 넣어버리고 그렇게 해서 나는 서서히 죽어 가겠구나. 이건 다 내가 이 절망스런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신의 큰 그림, 로드맵 같은거다. 이렇게 결론 지어버리고 순응한다.
내가 그렇게 말한적 있다. 불안은 내가 어떻게 되었던간에 생각을 하고 결론을 내어 버리면 그렇게 멈춘다. 저땐 저런 결론이 통했다. 몸과 마음이 붕괴되면 별 이상한 결론이 다 통한다. 사람이 이렇게 강하면서도 나약한 존재이다. 우울증 환자들 거진 다 나중에 이런 결론으로 퉁친다. 정상인 눈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나오면 되잖아, 환경을 바꾸면 되잖아. 이것도 에너지가 있으면 먹히는 말들이다. 그 결론이 확실하고 좀 순응하다가 몸이 회복되면 다시 자살 시도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어차피 나는 고통스럽게 살다 죽을꺼다, 왜냐 이것이 세상의 섭리이고 신의 섭리이니까”이렇게 퉁쳤는데 어머? 불안이 줄어 들어 버리면 잠시 사람이 평온해지니 해답을 얻은거 같다. 이렇게 죽음만이 결국 길이구나 라고 착각하는거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으시대기 까지 한다. 내머리가 이렇게 맑아졌는데 어떻게 이게 큰 깨달음이 아닌가? 그래서 죽음에 대한 확신이 생겨서 다시 자살 시도 한다. 나는 그렇게 본다.
나는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을 읽아 본적이 없다. (2020년 편집하는 지금 이시기엔 완독을 했다) 삶에 대한 확신은 안 드는데 죽음에 대한 확신은 생기면 죽음을 택한다. 그게 그 당시 내 사고 회로에 따르면 이치에 맞았다. 일평생 공포에 시달리면 삶 자체가 지옥이다. 그렇게 떠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꺼다. 그래서 둘 다 결국 저런 결론에 도달했을꺼라고 생각한다. 이걸 니체는 죽음에 대한 로망스라고 하더라. 죽음이 나를 구원해줄 길이라고 믿는 그 판타지 말이다. 니체는 정말 인정 사정없이 어리석다고 뼈때렸다. 나는 그렇게 까지 자살한 이들을 어리석다라고 만은 못하겠다. 그들은 그게 최선이고 그것 밖에 안 보인다.
허나 세상은 당신이 일어설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줄꺼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삶은 불확실하지만 세상은 그자리 그대로 당신을 기다려 줄꺼다. 물론 직접적인 도움은 안 줄꺼다. 근데 그냥 당신이 복귀할 자리는 남겨 놓을꺼다.
그리고 이게 불과 10년전 얘기이다. 나는 내 과거를 이렇게 설명 못했다. 근데 이제 다 된다. 뭔 생각을 그때 했는지 무슨 감정이었는지 다시 재현이 되고 재구성을 할 수 있다. 삶에 대한 의지가 정말 무식하게 집요했다. 이게 내 성질이다. 무식하고 집요하다. 이건 엄마한테 물려 받았다. 무식한 부분은 고치려고 한다 그래서 똑똑하다는 철학자들을 좋아한다. 니체도 내가 봤을때 똑부러지고 융통성 있고 데카르트도 그렇고 스피노자도 그렇고 세네카도 그렇다.
아 시발… 암튼 나는 병원 나와서도 그렇게 7년을 더 (이미 성당 1년차였음 저때가) 성당에서 썩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엄마한테 휘둘렸다.
근데 병원에서 저런 결론에 도달할때 엄마는 나보고 찾아와서 자기 차 망가졌으니 보험사에 클레임 넣어달라고 나에게 전화를 몰래 넣어 줬다.
그때 알았지 엄마란 년은 진짜 상종 못할 년이구나.
자살 시도 하던 사람이 또 자살 하려고 셀프 장례 준비하고 있는데 저 만행을 저질렀다. 그것도 죽어가는 외동딸한테. 이완용 수준이다. 나에게 엄마는 저런 수준이다. 나 진짜 집나올때 엄마보고 씨발년이라고 했다. 딱 병원에서 저 장면이 떠올랐다. 내 막내 고양이를 엄마가 문을 활짝 열어놔서 집 나가게 했거든. 나를 부셔 놓더니 고양이까지 부셔버린다는 생각에 압도 당해서 욕을 했지만 후회는 안 한다.
내가 이런말을 꺼리낌 없이 하게 된 계기도 알고보면 부모는 정말 나를 인격이 있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30년을 쌓이다 보니 그렇게 화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부모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때 부모가 정말 쓰레기 같으면 당신이 백번 천번 옳다. 근데 남들한테 이걸 설명을 하려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다. 왜냐 하면 남들에게 왜 엄마는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인척 하는 요물인지 설득을 시켜야 하니까. 보통 사람들은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거라고 배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한테 그냥 생각나는데로 털어 놓으면 사람들이 당황하기 마련이다. 보통 사람들은 당신이 내놓는 엄마욕을 받아들일 그릇이 애초 부터 안 된다. 이래서 정신전문가 한테가서 상담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같이 당한 사람만 그걸 알아보겠지만 뭐 나 같은 사람이 그리 흔치는 않다. 어쩌다 보니 촉이 좀 발달해서 어린 아이들 중에 유난히 주눅든 애들은 이제 좀 알아본다.
나는 이게 정말 마치 귀신보는 영험함 이런거 같아서 소름끼친다. 이런 애들 보면 막 자기 엄마나 아빠가 막 둥둥 떠다니면서 애를 다그치는 모습만 생각난다. 그냥 이게 보인다. 이게 나였던 적이 있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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