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nalysis of the Self: Heinz Kohut
- Ramblings K
- Jan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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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솔직히 부모 흉을 본다고 해서 나 자신도 부모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아님. 되리어 그것 마저도 내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고쳐나가야 한다는걸 인정해야 자기애성 인격장애 자체나 내가 가진 만성 불안장애에서 해방이 된다고 봄.
내가 나르시시스트 피해자를 대상으로한 치유 서적 대신 나르시시스트 치료서적을 굳이 읽는것은 내 엄마가 처해졌던 애착 결핍의 환경과 같은 상태에서 내가 양육 되었기 때문이고 평생을 따라다니던 불안의 원인 또한 애착결핍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임.
하인즈 코헛의 “자기(Self)에 대한 분석”을 마침내 다 읽었음. 이 또한 나르시시스트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책임.
이 책에서 코헛이 상대한 여러명의 환자들 중 거대 자기 (grandiose self) 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갓난아기때 부터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상담 치료로는 이런 무의식속의 기억까지는 꺼내 놓을수 없으므로 기억을 되짚을수 있는 유치원때 아니면 더 훗날의 기억에 의존을 할 수 밖에 없음. 거기서 언급되는 기억들이 내가 어릴적 엄마한테 받았던 리액션과 너무나 같아서 읽을때마나 섬찟했던 감정들이 많음.
대표적으로 거대 자기를 가진 사람들은 어렸을적 자신이 아이로써 해낸 첫 성과를 인정 받으려고 했을때 부모에게 그 기회를 차단 당한적이 대부분 임. 만약 아이가 처음으로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았다고 치면: – 시험 점수를 자랑하려고 한창 격양된 몸짓과 목소리로 소식을 전달했을때 엄마는 “넌 근데 목소리는 왜 그렇게 쇳소리를 내고 몸은 비비꼬고 그러니? 경망스럽게 시리” 이런식으로 내 성과와는 아무런 연관 없는 나의 습관 (부던히도 자연스러운)에 대한 비난을 한다거나 (나르시시스트 엄마, 내 엄마가 자주 쓰던 수법) – 시험 점수를 자랑하자마자 대화를 가로채서 자신의 쇠약한 컨디션이나 집안 상황에 고통 받는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거나 (우울증에 걸린 엄마) – 책이 미국 70년대에 출판된걸 생각하면 한국 치맛바람st 멘트는 나오진 않음. 굳이 내가 덧붙여보자면, 시험 점수를 자랑하는 아이에게 약간은 따분하고 진심이 없는 표정으로 칭찬 치례를 간략하게 한 후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여기 밑으로 떨어지면 안 되는거 알지? 정상까지 올라가려면 총력을 다해야해.” 정도가 있겠음. (나르시시스트 엄마)
이러한 분석을 통해 이 사람들에게 내제 된, 그리고 나에게도 내제 된 문제 (나르시시스트에겐 우울감과 무기력, 공허함, 나에겐 공황)는 인정을 받음에 있어 차단을 당한것에 대한 공포심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음. 엄마에게 인정 받고자 부르짖었지만 마치 벽에다 대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트라우마에서 평생 벗어나지를 못하는것임. 이 같은 경우 아버지의 역할도 크게 작용을 하는데 대게 아버지들도 이렇게 인정욕구가 큰 아이에게서 더 멀어져 버린 경우가 아주 큼.
이래서인지 나르시시스트들이 특히나 상담치료를 받을때 포기하게 되는 요인이 상담자의 얼굴에서 자신의 엄마가 보일때라고 함. 자신은 용기를 내어서 자신이 한주간 무엇을 이뤄냈고 얘기를 하지만 상담자가 넓은 아량을 베풀어 찬사를 해주지 않는 모습에서 자신의 엄마가 보이는것이고 이런건 아주 심각한 분노 표출로 이어짐. 어찌보면 이건 상담자 자신도 큰 리스크를 안고 가는건데 나르시시스트들은 상담자를 만나면 만날 수록 정서적 융합을 원하고 심할때는 분리불안을 겪을수 있으며 환자의 분노 표출과 폭언, 무시 이런것들을 별 큰 데미지 없이 받아들여야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임. 상담자를 전혀 다른 타자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기는 일임.
이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면 애석하게도 나는 그리고 그 나르시시스트 환자들은 정상적인 정서적 애착을 만들수 있는 환경에서 자랄 수 없었고 내 부모가 그 결핍된 환경에 큰 부분을 차지 했다는 사실을 인정을 해야 하는것임. 정말 ㅈ같은 팔자를 타고 나서 그런 사람들 밑에서 컸음. 진짜 이건 어쩔수 없음. 받아 들여야지.
뭐 그럼 다 늙은 부모 붙잡고 다시 돌려 놓으라고 뗑깡을 부릴꺼냐 아님 그렇게 무지했던 부모에게 복수라도 할꺼냐. (그런데 이 분노의 시기도 치료 과정에서 피할수 없는 과정임. 이 분노와 원망을 어쩔수 없이 해야 됨. 피해자도 사람 아닌가)
사람이 뭣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면 이게 죄인지도 모르는데그런 천지 분간 못하는 모자란 사람 붙잡고 정의 구현이 어떻게 가능해? 나도 그 분노의 시기를 1년간 겪었는데 그 시기가 지나면 인생엔 내가 어찌 손을 댈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뚜렷한 컨셉이 잡힘. 그냥 내가 손댈 수 없는 일은 걱정을 해봤자 헛짓거리라는걸 알게 되는것 임.
이게 사람이 저런 태도로 양육이 되다 보면 나의 감정 통제를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데 나르시시스트들은 주로 모든 감정을 분노, 행복(평안한 행복이 아닌 통쾌함과 스릴)으로 퉁을 치게 되는것이고 나 같은 경우는 무감정 또는 공포로 퉁을 치게 됨. 다른 감정은 정말 반나절 시간 잡고 곰곰히 생각해봐야지 내가 공포가 아니라 분노를 했었구나, 우울감을 느꼈구나 이렇게 파악이 가능함. 그냥 부모가 그 정도로 새끼를 반병신을 만들어 놓은거지.
슬플땐 울고, 화나면 소리치고, 즐거우면 웃고, 배고프면 먹고, 찝찝하면 씻고 이런 기본적인 상태 파악이 안 되는거 임 이런 사람들이 (나 포함).
코헛의 책 제목대로 자기에 대한 분석은 뭐 자기개발서에서 말하는 성공할 수 있는 나의 장점 이런것에 대한 분석이 아님. 내가 특출난 점을 찾으려고 하는것도 아니고 흠결을 분석하려는것도 아님. 커가면서 자신이 특출났거나 열등하다고 지레 짐작하고 내 자신에게 씌워 버린 가면을 벗겨 버린다는 취지의 분석임. 진정한 자기라는것은 아주 단순함. 나의 자기(self)는 내가 지금 무슨 감정과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해소해야 할 욕구가 무엇인지 내 특출난 가면 (grandiose self) 보다 더 잘 알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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