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 Ramblings K
- Dec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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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Nov 24, 2020
넌 뭐가 그리 잘나서 나르시시스트에 대해서 그리 아는척을 하냐 그러는데 외가쪽 가족력이 어마무시함.
할머니 나르시시스트, 할아버지 알콜 중독에 공금 횡령하고 유흥에 날려버린 소시오패스.
이 둘이 결혼 하니까 아이 다섯중 3명이 나르시시스트가 되었음.
장남은 외향형 나르시시스트에 군대에서 PTSD 외상후 트라우마로 알콜 의존 생김. 결말이 좋지 않았는데 참 사연 많은 인생 이제 뒤로하고 하늘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음.
둘째인 울 모친은 내향형 나르시시스트.
셋째는 정상이나 아내가 외할머니와 복제판인 내향형 나르시시스트임. 셋째의 몸과 정신을 다 소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그렇다고 해서 울 아빠 같이 가족에 대한 애착은 없음. 그래도 가족에게 할 도리는 함.
넷째는 그덕에 말 수 없고 바둑에 미친듯이 몰입 하는 성격으로 바뀜. 그래도 개중에 제일 좋은 기억만 있음. 그냥 결자체가 선한 사람임.
다섯째인 막내 이모는 혼종 나르시시스트인데 남편을 외향형 나르시스트에 약간 반윤리적인 행태를 보이는 사람을 만남. 돈 없는 칸예와 킴카다시안 연상 하면 됨.
외할머니 조상은 가만보면 친일을 하고도 남았을꺼 같음. 외할머니 형제들도 여자들은 내향형 나르시시스트에 하나뿐인 아들은 70년대 구청인지 그런데서 국민들 고혈을 빨아먹던 그런 탐관오리였다고 함. 소시오패스인거임. 외할머니 막내동생은 그나마 경계성 인격장애여서 남 피해 안 주고 본인만 평생 괴로웠음.
그냥 자기애에 있어 여러가지 타입을 다 보고 자람. 난 20살까지 이게 정상적인 가정환경인 줄 알았고 어른 되면 다 저러는 줄 알았음. 저 사람들 대화 하는 패턴이나 합리화를 하는 과정 몸짓, 표정 이런것들 다 아는척 하는 이유가 30년을 맨날 보고 살았고 이 사람들 특징들이 죄다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 없었음.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샘플을 못보고 자람. 얘네들 성질만 뇌리에 박혀 있음.
이게 DNA에 박힌 유전이냐? 그건 또 아님. 나 같이 자기비하에 내 성격자체에 혐오를 가진 사람이 왜 저기에서 나오겠음? 저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이런 가족사 자체가 없는것처럼 치부함. 내가 이렇게 까고 다 얘기를 이유는 사람들이 좀 이런사람들 가릴 줄 알아서 불운을 피해갔으면 하는 맘일 뿐임.
나르시시스트 관련해선 코헛의 이론이 제일 잘 알려진 이론인데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첫 1년에서 2년 내지 사이에 자신이 처음 본 보호자의 이미지가 시간을 두고 변형을 해가면서 사람은 이러하구나를 파악하고 자신도 그리 되려고 노력 하게 될 동기를 얻게 되는것임. 이 시기에 갓난 아기 눈에 보이는 엄마는 그냥 나 인걸로 착각함, 이때는 내꺼 니꺼,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개념이 안 잡힘. 게다가 초반에는 엄마나 아빠가 너무나 숙련되게 걷고 말하고 자신을 먹여주고 씻겨주니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처럼 보임. 이것은 아기로 인해 선망의 대상이자 내가 추구해야 할 이상향으로 자리매김을 함. 허나 애가 커가면서 엄마가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음식 먹여주다가 떨어트리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이런 허접함을 보여주는데 이건 애에 있어서는 적색신호임. ‘내 보호자가 저리 허접하면 내 욕구는?’ 이렇게 나와버린다는 것임.
엄마의 불온전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선 아기가 그럴 수 있게 부모가 정서적 쿠션 역할을 해줘야 하는것임. 이게 절망을 이겨내기 최적의 상태임. 애기는 태어나면 세상 최고의 나르시시스트임. 배고프면 밥달라고 소리지르고 졸리면 졸립다, 엉덩이 축축하면 불편하다 별 오만가지 이유를 다 대면서 자신의 욕구 불만 해소를 해달라고 함. 정서적 쿠션 역할은 대게 보통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이면 말도 못하는 애가 얼마나 불편할까 발을 동동구르며 온 진심을 다해 다 해결해주려고 하는 것임. 언제나 나의 욕구를 해결 해줄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것. 엄마같이 불온전한 인간이 되어도 엄마가 도와 주면 그만. 이렇게 용기를 얻은 애들은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됨. 누구나 보고 말 걸고 거리낌 없이 친구하자 이랬는데 상대방이 뺀찌를 놓아도 충격을 덜 먹음. 나 그대로 사랑 해주는 엄마가 있으니까. 그래서 태연하게 왜 너는 내가 싫은건데?라며 물어볼 수 있는 당당함도 생기고 엄마한테 쪼로록 달려가서 위로도 받음 엄마는 더 나아가서 그애를 만날때는 이래이래해야 한다 알려줌. 그럼 또 가서 해보고 동기부여가 됨. 이게 건강한 나르시즘임. 절망을 그나마 쉽게 견뎌 낼 수 있음.
근데 이 때 애기의 이 욕구해소 기회가 아예 차단이 되는 때가 있음. 부모가 죽거나 부모에게 버림 받았거나 부모 자체가 타인에 감정 헤아림이 없는 나르시시스트일 경우. 그럼 아이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음. 내가 따르고 내가 미래에 장차 되어야 할 이 전지전능한 부모라는 사람이 나를 저버리다니. 엄청난 배신감이 따르고 이어서 엄마나 보호자가 보여줄 더 이상의 기대이하의 실수를 극구 차단해버림. 이미 나락으로 빠진 아기는 더이상 엄마나 보호자의 허접함, 더 나아가서는 내 환경이 나에게 줄 절망감을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어지는 것임. 그래서 이 전지전능한 자아 이미지(내가 태어난 직후 본 선망하는 나의 보호자 이미지, 추후에 내가 되어야 할 이미지)가 더이상 변이가 안 됨. 나이가 들어서도 내 뇌리속 엄마의 이미지와 현실속 인간으로써의 엄마의 이미지가 엄청난 갭이 생기는거임.
엄마가 과잉 자아를 가지게 된것은 자신 주변과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일절 다 차단을 해버린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됨. 더 이상 알게 되면 나만 다칠꺼 같으니까 그럼으로써 현실을 극구 부정하게 되고. 유아기때 잠시나마 누렸던 뗑깡부려서 내 욕구 충족하기 이것이 주는 안정감에 중독 되어버리는.그리고 내면의 자아는 더이상 성장을 멈춰 버리게 되고. 그렇지만 엄마의 유년기는 뗑깡 자체를 대놓고 못 부리는 상황이었음. 할머니가 엄마가 뭘 원하는지 알리도 없고 집안일이나 돕고 막내 애기나 돌보라 닥달이나 할줄 알지. 그러니 할 수 없이 기죽이고 군말 없이 다 함. 어른 되면 잘 풀리려나 기대감에 젖어듬. 무의식 속에 엄마가 그린 어른의 이미지는 완벽 그자체이거든. 나이 들면 그렇게 될꺼란 환상 그것 만으로 성인이 될때까지 버팀. 그러나 나이 들어도 달라지는 것 없음. 허나 엄마는 오래시간 현실 부정을 해왔기 때문에 이제 완벽한 어른으로써 내 권리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뿐임. 완벽한 남자를 만나서 그 유아기때 처럼 뗑깡을 부리면 남자는 나의 모든 욕구를 해결해줄꺼야. 허나 이런 완벽한 남자는 세상에 없음. 그 누구도 성인 여성이랑 결혼 하면서 그 마치 어린 아기의 응석을 다 받아줘야 된다는 각오를 다지지는 않음. 이건 정상적인 남녀의 관계가 아님. 그래서 남자들이 보통 질려서 떠나감.
이건 나에게도 일부 해당되는 이야기고 내 엄마, 내 할머니에게도 해당 되는 이야기임. 나도 내 불안장애의 근원은 이 왜곡된 선망의 대상에 있다는 것임. 나는 운이 좋게도 아빠의 흥과 잔머리, 혈육이면 다 퍼주는 호구 같은 성격도 좀 쎄게 물려 받았음. 성공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선 이건 등신 취급 받는 성질임. 본인도 잘 안풀렸고 평생 엄마의 조종아래 기도 못펴보고 살게 됨. 근데 이게 개인의 행복 추구에는 너무나 이상적인 성향들임. 원초적인 인간의 욕구가 이 성향만 쎄면 다 케어가 가능함.놀이와 재미를 추구하는 성향, 힘들이지 않고 쉽게 살려고 잔머리 굴리는거고 상대방과 애착을 형성해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으려는 성질. 아빠가 자주하는 말이 ‘인생 뭐 별거 있냐 이런거 즐기려고 하는거지.’ 이 성향들이 다 죽었으면 난 평생 엄마의 부속물로 남았을꺼고 엄마의 복제판이 되었을꺼임.
엄마는 아빠처럼 살지 말라고 험담을 늘어 놓았는데 아빠 말대로 해도 별 일이없고 되리어 더 나을때가 많았던거임.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엄마의 험담덕에 난 아빠를 제일 먼저 혐오하게 되었으나시간이 차츰 지나가면서 엄마란 사람도 뭐 그닥 다 맞는 말을 안 한다는걸 알게 된 후 둘 다 혐오 하게 됨 ㅋㅋㅋㅋ지금은 아빠는 아주 그나마 정상적인 사고는 가능했다 싶음.
평생 되물림을 내 대에 끊고 싶다면 개인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것이 이 때문임. 나는 엄마와 같은 태도로 양육이 되었지만 이게 잘못 되었음을 인식하고 나 혼자서 나를 다시 재양육을 해야 함. 그래서 내가 알고 있던것들 중 나한테 진정 도움이 안 되는것은 잘못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함, 내 부족함은 손가락 받을 짓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이 세상에 융화 될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라는걸 받아 들여야 함.
보통 사람들이 성격은 바꿀 수 없다하는데 자기에 대한 부정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워도 그렇게 해야 내가 더 편하게 살 수 있겠다 싶으면 그게 성격 바꾸는거라고 생각함. 인간은 매순간 바뀌는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것이 이치이고 그러면 내 옛것도 부정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거고. 그럼 사람의 성격은 어떠한 고정된 틀속에 갇힌게 아니라 액체의 성격을 띄어야 되는게 아닐까 싶음. 그래서 계속 변형하는거고. 나 또한 나중에 어떤 성질을 띄게 될지 장담 못함.
나르시시스트들은 이런 글 보고 질겁을 함. 세상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니 단점을 그렇게 떠벌린다고 나를 마치 상종 못할 사람 취급함. 솔직히 이런걸 개인의 치욕스런 단점으로 보는거 자체가 건강한 나르시즘이 없다는거임. 어떠한 실패 없이 그냥 완벽이 주어지길 바라는 건 학습의지가 없다는 얘기니까.
엄마의 형제중 막내 이모 자식들 중 하나는 ADHD성향으로 발전되고 하나는 아직 이십대 초반이지만 어떻게 흘러갈지 솔직히 궁금함. 얘네들은 나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긴 함. 부모 둘 나 나르시시스트면 뭐.. 셋째인 외삼촌 아들은 전형적인 쌍도남자 스탈로 길러졌고 엄마 기에 눌려서 전반적으로 매사에 의욕이 없었음. 만약 그 환경을 벗어날 노력을 안 한다면 마마보이가 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임. 뭐 ㅈ 같은 시월드도 동시에 열리는거고. 우리 대에 와서는 그래도 사람들 피해주고 그런 악질 쓰레기로는 다 안 큰거 같음. 첫째 외삼촌 자식들이 많이 걸리긴 함….
저렇게 인성파탄자들만 있으니 명절때 제사지내러 모이는 일이 없음. ㅋㅋㅋㅋㅋㅋ 서로가 서로를 헐뜯으면서 지들 잘난거 인정 받으려고 하고 유산 상속에 해가 되는 라이벌 정도로 여김. 이모랑 엄마랑 외할머니랑 같이 모이면 진짜 대박임. 그냥 서로 서운 했던거 40년전꺼 꺼내서 존나 억울하다 이러면서 울어 제끼고 지랄함. 무한 루프 서로가 서로 말이 안 통한다고 ㅋㅋㅋㅋㅋㅋㅅ밬ㅋㅋㅋ 존나 웃프네. 외할머니는 이모가 자주 호주로 불렀는데 한국으로 치면 평창 거리보다 더 먼 블루마운틴 울 이모 집에서 이모랑 대판 싸우고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데 시드니 우리집 까지 열차타고 찾아옴. 그리고 엄마랑 또 대판 싸우고 바로 출국함 ㅋㅋㅋㅋㅋ
웃긴것이 이모가 큰 돈 들여서 호주로 할매를 불러들이는 이유는 효도는 아님, 약간의 그래도 엄마에 대한 도리를 해야 한다는 책임 같은것 약간 섞여 있음. 그러나 제일 큰 건 내가 이렇게 돈을 흔쾌히 쾌척해서 호주 구경도 시켜주고 솔직히 나같이 잘난 딸이 어디 있냐 이렇게 부심을 부리는데 있음. 그러니 울 할매 같은 존심에 이런 의도 다 파악이 왜 안 되겠음? 그래도 경남 진주에서 호주도 여러번 갔다 오는 그런 팔자 핀 신식 할매란 이미지 때문에 더러워도 가는것임. 그러나 그 알량한 존심 때문에 또 딸한테 뭔 소리함. 너는 뭐 나에게 거지 적선 하는척 옛다 받아라 카고 뱅기 티켓 끊어 줬나? 드르브마 내가 이거 다 물려 줘뿌모 된다 아이가? 이럼. 그럼 이건 이모에게 큰 팩폭임. 그렇게 또 죽자 살자 달려듬 ㅋㅋㅋㅋ여기서 엄마는 할매한테 돈 주는것도 아까워함.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전에 명박이랑 근혜랑 대선 후보 경선때 둘이 붙어서 서로 팩폭 날리는게 이런 맥락임. 지들끼리는 그 아킬레스 건을 너무 잘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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