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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잡설

거의 도인 수준에 다다를 정도로 남의 시선 의식 안 하는 애들은 옷 차림에 아예 시간 쓰는것도 아까워 하기 때문에 철 지나거나 낡디 낡은 옷을 입고 다닌다.

미국 남자들 많이 이렇게 한다. 정말 밀레니엄때 유행한 이상한 해골 문양 새겨진 티 입고 아직도 부츠컷인지 스트레이트인지 그런 청바지 입고 샌달에 양말 신고 다닌다고 한국 인터넷에서 욕먹는거 많이 본다. 근데 그 중에서 진짜 도인 수준으로 남의 시선 조또 신경 안 쓰는 애들 정말 많다.

한국에선 이런 표현 안 쓰는데 영어로 “feel comfortable in my own skin” 라는게 있다. 이 표현이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상징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걸 굳이 직역을 하면 내 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인데. 이게 내가 내 몸의 모양에 만족을 느낀다는게 아니다. 그냥 내 몸 자체에 대한 어떠한 이질감이 안 느껴진다는거다.

그냥 숨을 내쉴때 숨 쉬는 패턴에 머리를 집중을 하면 숨 쉬는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것을 가끔 느낄 수 있다. 이게 머릿속으로 숨을 쉬는 행위를 의식, 인지를 하게 됨으로써 그냥 본능적으로 나오는 사이클이 깨지는거다.

우리 호흡할때 “자 호흡 들어간다 입벌려라. 올치. 그만큼 입 벌리고 0.5초 유지하고 다시 닫고” 뭐 이렇게 머릿속으로 대놓고 상상하나? 아무도 이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숨쉬는건 지가 알아서 자연스럽게 된다.

Feeling comfortable in my own skin이라는건 내 몸의 이미지에 대한 생각이 아무 생각이 안 드는것이다. 숨 쉴때 숨쉬는거에 대한 생각을 안 하는것 처럼 몸을 움직이고 그냥 24시간 몸의 형태에 대한 어떠한 생각이 아예 안 떠오른다는 얘기다.

“나는 내 몸에 만족한다. 내 몸은 아름답다.” 자기 암시를 하고 다닌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외모 강박에 벗어나기 위해 이런 자기 암시하는데 나는 진짜 근본적인 뿌리는 그게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다. 굳이 꼭 찝어서 설명을 하면 “내몸이 어떤 모양이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몸이 몸 구실을 하면 그걸로 다지.” 이런식으로 암시를 해야 효과가 더 크다.

거식증에서 내가 2번을 빠져나왔다. 어떤 외부의 인지치료 없이. 다이어트 강박이 부질 없다는거 느낄때가 언제 인 줄 아나? 내가 이렇게 노력해봤자 길거리에 사람들은 힐끗 쳐다 보고 그게 다 구나. 기껏 살 뺐는데 사람들이 살 빠졌네 그렇게 말 한번 해준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 언급을 안 한다. 그게 밥을 굶고 미친듯이 운동을 한것에 대한 내가 받는 보상이다.

만약 내가 살을 뺀걸 아는 애가 나를 만날때마다 살빼서 대단하다 그렇게 칭찬 해준다면 그 사람은 그냥 자기 관심이 다이어트에 있는거 일뿐이다. 그 사람 눈에는 살뺀 사람들만 들어 온다. 일반인들은 그렇게 남이 살을 뺐는지 안 뺐는지 만날 때마다 나의 노고에 격려 해주고 열광적으로 안 받아 준다.

타인들이 모두 길가다가 우연히 본 당신에게 그렇게 관심을 줄 정도로 마구잡이로 자신의 정신력을 소진 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살기 바쁘다. 뼈 때려서 아플꺼다. 지구 인구 70억 정도인데 딱 그중 하나가 당신이고 나도 그중 일부인거다. 정말 그게 단거다. 이거 깨달으면 다이어트가 얼마나 허무감만 안겨주는지 잘 알게 된다.

외모지상주의적 사고 방식은 외모에 대한 강박적 비판으로 이어진다. 머릿속으로 내 배는 너무 나왔네 이러면 내 배에만 계속 신경 쓰이고 배를 들숨으로 줄여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입고 있던 옷 자락을 끌어 내려 가리려고 하고 그게 어떨때는 내 뱃살 자체가 내 몸의 일부분이 아닌것 처럼 어색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그럼 uncomfortable in my own skin이 된다. 내 육신이 내 꺼같지가 않고 어색하고 거추장 스럽고 불편하다. 이게 의식을 해서 그렇다. 남들 비위 맞춰주려고 내 몸에 대한 의식을 해서 그렇다. 숨쉬면서 숨쉬는것에 대한 의식이 숨을 쉬는걸 버겁게 하는것처럼 내 육체에 대한 비판, 아니 그냥 생각을 떠올린다는거 자체만으로 내 육신이 그냥 불편해진다.

남 앞에서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서 어깨 꼿꼿히 펴고 몸매 빡세게 가꾸고 이건 내 외모에 대한 당당함이 아니다. 남의 시선 때문에 노이로제 걸린거고 그런 사람들은 자기 몸을 자기가 버거워하고 불편해하며 몸의 관리 때문에 부담을 매일 느끼고 그닥 만족하지도 않으면서 남들 앞에서 내몸에 만족하는척 해야 한다고 자기 암시하는거다. 내 육신이 버거워지는 당당함은 건강한 나르시시즘이 아니다. 이건 병적인 자기애 선상에 있는것이다. 나르시시스트들과 경계선 장애를 겪는 여자, 남자 다 이런 생각에 젖어서 산다. 근데 이걸 또 인정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이게 깊게 무의식속에 박혔다. 답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평생 노래 썸의 가사 처럼 내꺼 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육신을 짊어지고 사는거다. 고난의 행군 참 길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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