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의 해소
- Ramblings K
- Feb 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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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학대를 어려서 받은 사람으로써 나를 제일 괴롭히고있는 부분이자 해결해야 할 명제는 감정과 욕구의 억제 해소이다. 그중 제일 크게 문제 되는것이 식욕에 둔감한 것이다.
어릴적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인 부모 밑에서 크는 아이들은 착한아이 증후군 또는 조용한 경계성 인격장애라고 불리는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나 또한 유치원 이후 극도로 엄마의 따가운 눈초리를 자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모든면에서 행동과 말을 극도로 점차 줄이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들은 어린 자식도 내 욕구에 훼방을 놓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 아이의 생활습관도 들쑥 날쑥거리는 자신의 기분에 맞추길 강요한다. 생존에 가장 필요한 식욕까지 엄마 분위기에 맞춰줘야 한다.
어려서 부터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 자신이 모유수유를 하면서 어린 내가 어찌나 말썽을 피웠는지 젖가슴에 피가 나오는 고통도 참으며 아이를 키운 자신의 모성애를 강조했다. 솔직히 이것에 대한 사실 파악은 힘들다. 그나마 엄마의 발언으로 나마 유추할 수있는것은 나는 3살까지 엄마의 젖을 달라 떼를 쓰고 18개월이나 되서야 걸음마를 뗀 엄청난 분리불안 증세를 보였다는것이다. 보통 분리불안은 아이가 엄마에게서 애정어린 손길 (유아기에 아이가 원하는 애정은 숨막혀 죽을 정도의 수발과 사랑임. 보통 어른간의 애정이 아님) 을 적당히 못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을때 발현 된다는 점이다. 이런면에서 들었던 것과 내가 행동했던 패턴의 괴리가 느껴진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의 젖을 내가 하도 물어 뜯어서 피가 났다 말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내 식탐에 대해 자책을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는데 본인은 그렇게 유도를 한것이 아니었지만아이를 깎아 내리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격상 시키는 시도는 결국 이런쪽으로 밖에 흘러가는것이 아닌가 싶다.
엄마는 장사를 하면서 돈을 만지는것에 유독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쳤다. 그렇기에 자영업자 생활에 자식의 안위는 큰 허들일 뿐이었고 초등학교 시절엔 학원을 여러군데를 보내며 자신만 가게에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그덕에 90년대 초반에 경기도에서 초딩이 학원을 하루에 두개 이상 가는건 그렇게 흔한 정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주변 사람에게 학구열 쎈 엄마라는 이미지 까지 덤으로 얻었다.
그래서 땅거미 떨어질 무렵 허기진 모습으로 와서야 엄마는 자신의 엄마역할을 수행하는것이다. 보통 가게 뒷방에서 라면을 끓여 준다던지 분식을 시킨다던지 이랬는데. 라면이 이골이 난것도 있으며 고학년이 되어 용돈을 받으니 내가 집에 오기전에 이미 요깃거리를 한것이 있으니 항상 엄마의 음식을 거부했는데 그덕에 나는 차려주는 밥 (라면?)을 거부하는 못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자신은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가장 간편한 식으로) 엄마 역할을 해줬는데 내가 못된거였다. 이런 말에 또 홀딱 넘어갈 수 밖에…엄마가 간혹가다 반찬을 할 경우에 똑같은 반찬을 적어도 한달에서 두달을 매일 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또한 자식 아니,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결여 되어 있는걸 보여준다.
엄마가 집에서 저녁이라도 해줄려 치면 정말 그 밥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도 가시밭길이었을꺼 같다. 물려서 먹기 싫은 반찬인데도 엄마는 그걸 하면서 마치 자기가 강제 노역당하는것 처럼 내게 한풀이를 하니 밥맛이 있었겠나. 게다가 나를 방어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더 풀만 죽고. 그 무렵 친구 집에 가서 라면을 얻어 먹는데 친구가 라면 종류대로 구비해놓고 고민하는 모습, 자신은 라면이 맵다며 우유를 부어 놓고 김치도 두어가지 세팅해서 먹는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느낀적이 있다.
이러하여 6학년정도 방학끝나고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학교를 갔는데 이때쯤 부터 그냥 식욕제어에 도가 텄던거 같다. 매일 낮 2-3시에 일어나 5시 부터 만화보고 엄마가게서 분식 같은거 시켜먹고 한 9시쯤에 자고 무한반복. 그래서 사춘기때 유난히 나 자신에게 음식으로 가학을 했던것도 얼추 흐름이 맞다 싶다.
나에게 있어 음식이란 그냥 열량 같은 개념이었다. 먹는 즐거움을 느끼기엔 경험이 한정되어있고 그것 또한 가시밭 걷듯 차가운 시선을 피해가며 눈칫밥을 먹으니 말이다. 외동딸이 집에서 눈칫밥을 먹는 것처럼 이질적인게 있나 싶다.
이제서야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또래 여자애들이 ‘나는 일에 집중하면 허기도 못 느껴. 식욕이 제어가 되니 다이어트도 되고 좋지.’ 이런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갑갑함을 느끼는것이 본인은 그게 미모지상주의 시대에 괜찮은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에 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음식에 대한 욕구가 자연히 안 생긴다는건 절대 어떠한면에서도 어드벤티지가 아니다. 그건 되리어 누구나 다 갖고 태어난 욕구에 대한 거세라고 본다. 이제서라도 자신의 존중감을 어떻게 해서라도 되찾아야지. 적어도 몸에 피가 돌고 있는 인간이라면 말이다. 이런 생각을 내가 항상 해봐서 더더욱 내 과거에 부끄러운 나머지 저런 발언에 반발심이 드는걸 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본인맘에 안 들면 한끼 먹는 음식도 대충 차려줬던것 처럼 나도 내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낄때마다 음식을 제한하고 최대한 맛없고 영양가 없는걸로 마련했다. 대학때 우울증에 학업에 매진 할 수 없었을땐 그 자기혐오가 도를 넘어서 가학을 목적으로 한 거식증으로 이어졌다. 몸매에 대한 강박이 아닌 정말 내 자신이 싫어서 내 자신에게 고문, 형벌을 내린거다. 하루종일 다이어트 콜라에 초콜릿 하나로 나는것도 모자라 레포트 쓸때 진행이 안 되면 일부러 잠을 안자고 깨어 있었다. 내 속에 내면화 된 엄마의 목소리는 마치 안기부 고문관 수준이었다. 엄마는 그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뇌리속 엄마는 이미 괴물 그 이상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학대의 문제는 엄마 본인이 육아를 소홀히 하여 아이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것도 있지만 아이가 본인 스스로 자신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하게 한다. 세상 단 하나뿐인 엄마에게 까지 이런 눈치를 받고 살아야 하니 아이가 스스로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이란 하찮음, 혐오심 이런걸로 밖에 이어질 수가 없는것이다. 나 또한 내가 사랑 받아야 할 가치를 부모를 통해서 확인 받고 못자라다 보니 자신에게 엄격해지다 못해 가학적인 성향까지 띄게 되었고 말이다.
정말 식욕에 있어서는 내 과거의 자신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어쩔 수 없어서 그리했단 생각에 서러움이 북 받혀오르고 극심한 공허함까지 몰려 온다. 왜 그렇게 사소한 재미까지 빼앗아 버릴정도로 나 자신에게 그렇게 잔혹했으면서도 일말의 낌새도 못차렸다는것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에 대한 답은 뭐 어느정도 다 알았다 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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