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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를 치유하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까?

나도 원래 비혼주의자 였고 비출산주의자였다.

결혼이나 동거 이런것에 회의적이었다. 이건 내가 김서형 비혼 선언 한거에 대해서 얘기를 쓴 적이 있다.

자기애 다친 사람들은 내색을 안 할뿐이지 남에게 내 날것을 다 보여주고 상대방에게 의지하는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빗장을 다 열고 이성 상대에게 의지하는 그 상태가 주는 미묘한 불안정감이 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아이인 내가 내 집에서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보호자인 부모가 나에게 정서적 기반을 제공해주지 않았고 내가 어떤 불편함을 느낄때 적정한 방도로 그걸 즉각즉각 해소를 안 해줬기 때문에 기대면 맨날 그 요구가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했다.

이게 뇌신경학적으로 볼때 attunement라고 하는데 엄마의 관심이 아이의 요구 사항과 싱크가 맞아 떨어지면 아이는 이것을 통해 보호자에 의지하면 안정을 주는구나 느끼고 입력한다. 그런데 애가 무작정 방치 되거나 보호자가 신경질적으로 아이에게 반응하거나 이렇게 될 경우 엄마랑 애랑 신체적, 정서적 교감이 지속적으로 안 생겨서 그 안정감을 학습을 하질 못한다.

아이가 공원에서 노는것을 지켜보면 참 흥미롭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안심을 하고 걸음마를 떼어서 엄마에게서 벗어나 공원에 있는 사물들을 느낀다. 그런데 문득 엄마가 그 눈길을 다른데로 돌려서 갑자기 거기서 만난 이웃 주민과 얘기를 하는데 정신을 쏟기 시작하면 애가 갑자기 겁을 먹고 단숨에 엄마한테 돌아 오려고 애를 쓴다.

아빠도 그렇다. 능숙한 아빠는 공원에서 애를 둘을 데리고 다니면서 한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통화를 하면서 자식들이 저만치 가다가 아빠가 자기를 안 보는거 같으면 또 와서 보채고 그러면 아빠는 애들 보면서 눈을 마주쳐주기만 한다. 계속 통화하다가 잠시만요 그러면서 말이다. 그러면 또 애들이 저만치 앞서 가고 이렇게 산책을 하더라. 애들은 자기 보호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단 확신만 들면 호기심 드는데로 어디든 나아간다.

이걸 제대로 체험해 본적이 없는 아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분리불안을 만성적으로 달고 다닌다.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거 같지도 않은 부모 품인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붙잡고 죽어도 안 놓으려고 한다. 내 집을 밖을 떠나 유치원 등교할 만큼 확신이 안 서서 그런거다. 엄마 품, 내 집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면 유치원이란곳도 한번 가볼까? 이런 호기심이 들고 정말 내켜서 가보는거다.

이렇게 삶의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체험하는데 있어서는 언제나 내가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 어른도 그러하다. 그런데 어른은 부모가 준 이 정서적 쿠션 역할을 대체할 수단이 배우자/파트너나 친구이다.

자기애를 다친 사람들은 배우자에게 기대게 되면 정말 아이가 받는 만큼의 그 정서적 안정감 (모든것이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을 무의식적으로 갈망하고 있는데 그걸 다 실현시켜줄 사람이 없다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살아 오면서 친분을 쌓게 되고 유독 자기 눈에 잘 띄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랑 비슷한 사고관과 같은 삶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서클에서 사람들 부류를 익히게 되면 이런 사람들한테 의지하면 다 안 받아 줄꺼 같은 불안함이 든다. 왜냐하면 정말 마냥 어린 아이처럼 전적으로 의지하면 안 될만큼 상처입은 사람들 인데다가 전반적으로 내 자신이 사람에게 갖는 경계 자체가 그냥 높다.

그래서 본능적으로의 이끌림 이것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본능이 다 옳은건 아니다. 사람은 오류투성이이다. 실수가 잦고 헛말이 튀어나오고 헛된 동작이 튀어 나온다. 특히나 자기애가 다쳤으면 이 사람 본성의 순기능이 잘 작동할 가능성이 낮춰지게 때문에 더 본능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이걸 바로잡을 수 있는것인지 아니면 괜찮은것인지 그걸 실험을 해야 한다.

출산도 솔직히 자기애가 치유되기 시작하면 저절로 아이들이 이뻐보이기 시작한다. 내 정신력과 체력이 저 칭얼거림을 받아줄 여유가 없으니 애를 보면 회피하고 싶은거 그걸로 본다. 원래 어린 아기는 엄청난 나르시시스트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칭얼 거리고 보채고 이걸 상상하면 숨막힌다. 근데 역설적으로 받는 아이 입장에선 이건 너무나 당연하다.

내가 원하는걸 당연하게 요구해서 엄마를 실컷 부려먹고 엄마에게 딴눈 팔지 말라며 엄마의 시선을 실컷 받고 자란 아이는 정신력과 체력을 불필요하게 소모를 안 하는걸 배운다. 그래서 성인이 되면 자식을 키울 만한 여력이 어느정도 된다. 배우자를 위해서 내가 다 해서 내 자신을 갈아 넣아야 된다 이 부담감 가지고 결혼에 뛰어들고 육아에 안 뛰어 든다. 따질꺼 따지고 나는 이 정도만 할테니 남자인 당신이 해라 조목조목 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다 해결 볼 수 있으니 뛰어 들만한 생각이 들어서 하는거다.

그렇다고 배우자를 고를때 있어서 막 진짜 나를 열렬히 사랑해서 내 수족이 되는 사람을 만나는게 아니고 그냥 본래 내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필요한걸 얘기를 하면 시정할 그런 합리적인 사람을 동반자로 찾을지도 모른다.

자기애 다친 여성분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진짜 마치 갓난 아기 다루듯 숨막힐듯 미친듯한 사랑을 해 줄 상대방을 물색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 속마음을 치유하면 그 무의식에 각인된 이 숨막히는 사랑에 대한 욕구에서 해방 될 수 있다.

그리고 숨막힐듯한 사랑을 어른이 된 나에게 내 남편이 해주는건 솔직히 병적인 집착 아닌가? 그건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 거려야 하는것이다. 엄마니까 1-2살 된 아이를 맨날 품고 그렇게 숨막힐듯한 애정을 퍼붓는거다. 그건 갓난 아이만이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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