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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카톨릭 세례 의식에서 신부는 첫 영세자에게 이같이 묻는다.

+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죄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난 엄마와 관계를 단절해 버리고, 종교를 버리기로 택했던 그 시절 이 구절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단칼에 그 평생가던 악연을 끊어 버리던 원동력도 저 구절 덕분이었다는게 엄청난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간혹 깨달음을 얻었을때 질러 버리는 진지빠는 글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테마가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서 빠져나오기 위했던 내 노력인데 이게 이 정도로 파악하기 까지 참 오래 걸리더라, 모친은 자신을 숭배하고 헌신하고 나약한 존재로 종속이 되어 자신의 자신감을 채워 줄 상대가 필요 했고 어떠한것도 모른채 태어난 아기였던 나는 그 도구가 되기에 너무 적합했다.

이렇게 나를 도구로 이용하는데 모친이 흔하게 사용했던 방법은 ‘죄책감’이었다. 나의 생존을 책임지는 엄마가 만약 나에게 ‘너 어떻게 되면 나 죽어버릴꺼야’ 라는 말을 한다면 그 아이의 머릿속에선 천만가지 생각이 지나갈테지만 나 같은 경우엔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일단 ‘어떻게’되더라도 엄마 앞에선 숨겨야지, 엄마가 알면 내 앞에서 죽어 버린다잖아’였다. 내가 잘못하면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는것 만큼 4살 남짓 어린아이에게 큰 공포가 더 있을까.

그러다가 하루는 엄마가 큰일을 낸적이 있다. 4살 배기 나를 집에 그냥 뉘어놓고 자신은 야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러 가는 용감무쌍한 짓을 저질러 버린것. 이른 아침에 깨버린 나는 발가벗은 채로 대로변까지 나가 엄마를 부르짖으면서 울었고 옆집 아줌마가 다행히 나를 알아봐서 자기 집으로 데려왔었는데 그후로 출근 시간 끝자락에 나를 찾아갔다고 하더라.

이 장면은 내 뇌리를 한순간도 벗어 난적이 없는데 이런일은 너무 비일비재 했다. 엄마가 장사에 눈이 팔려 방치해두는건 물론이고 6살때는 그덕에 도로에서 화물트럭에 치였던적이 있다. 유치원에서 나에게 사람 만한 곰돌이 인형을 선물 해줬는데 내 평생 그렇게 큰 인형은 처음 봤었다.

그 누구도 이게 다 보호자의 부재 탓이다 말을 해준적이 없으니 내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했던거 같고 결국 엄마가 나를 돌보지 않는 이유는 내가 잘못을 해서라는 죄책감이라는 공식으로 연결 되었다.

어떠한 대상을 숭배를 하고 찬양을 하기위해선 내 자신이 너무나 나약하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는것 이외에도 이것은 세상이 용납할 수 없는 큰 수치며 죄악이라는 관념도 큰 영향을 차지 하는거 같다. 쉽게 말해서 나약하고 흠많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난 언제나 죄를 지을수 있으며 인간의 고통의 탄생 자체가 원죄로 인한것이다. 어디서 들어본 얘기 같지 않은가? 이게 내가 이해하는 카톨릭 교리속 원죄론이다.

엄마는 정말 별 생각 없이 입교를 하고 내가 3살 되던 해에 나를 유아세례를 받게 했으나 이 교리는 내가 어려서 꾸며낸 ‘엄마가 나를 돌보지 않는 이유’와 아주 일맥상통했다. 엄마가 천주교로 개종하게 된건 엄청난 우연인거고 내 삶엔 비극적이기 까지 하다. 내가 심적으로 힘든것, 친구를 사귀는데 서투른것,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루는 이유, 겁이 많은 이유 다 내가 잘 못해서라는 생각을 더 확장 시켜준 셈이니.

이 그릇된 합리화로 성년까지 올라가니 카톨릭 교리가 내 안에서 공명하던 바가 크더라. 내 죄를 없애서 이 불안감에서 벗어나려면 헌신하고 헌신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엄마가 나를 조종하듯 종교가 나를 조종하는 셈이 되었고(그것은 종교 자체의 뜻은 아니었겠지만) 스물 아홉 되던해에 엄마가 나에게 30년짜리 주택융자를 선사하고 자신의 집장만 꿈을 이루던 날 나는 세번째로 엄마에게서 악의 모습을 본거 같다. 첫번째는 초등학교에서 나를 부회장으로 만들고 자신이 학부형회 간부로 위촉되던 때였고 두번째는 거식증에 걸려 식욕을 의지 만으로 억누르던때 태연히 내 앞에서 밥 공기를 비우던 모습이 었다.

그래서 그날로 30년을 책임져야 하는 집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날로 나의 죄의 근원이며 악의 지배자인 엄마와의 관계를 끊었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나에게서 헌신을 요구하던 성당도 끊어 버렸고.

이 날을 나는 내가 부모와의 이혼 소송에 이겨 나에 대한 양육권을 되찾은 날이라고 하고 싶다. 30년을 내가 홀로 내면속의 나를 키워 냈고 이제 당당히 그걸 이어가도 된다고 느낀거지.

그런데 더 웃긴점은 모친에게 과거에 대한 사과는 커녕 자신은 더 비참하게 길러졌다는 변명섞인 되받아침을 들었을때 내 머릿속에 떠다니던 구절은 예수가 죽을때 하늘에 대고 ‘주여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일을 모릅니다’라는 구절이었는데. 정말 잘못을 저질렀단 사실 부터 망각해버린 자에게 있어 사과를 받는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음. 용서를 하네 마네가 아니라 가해자가 뭘했는지도 기억을 못할정도로 나는 그런 존재였던거지. 그냥 말하고 움직이는 물체. 그래서 엄마를 버린다는것에 대한 죄책감 자체가 사라져 버렸음. 나랑 엄마는 어떠한 깊은 관계도 아니었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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