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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적 학대

Updated: Nov 20, 2020

요새 상담을 하면서 새로이 머릿속에 각인 되는 단어 조합이 있다.


바로 나르시시스트적 학대이다.


바로 나르시시스트와 깊은 관계를 맺는것 만으로도 학대에 노출 된다는것이다.


나는 이전까지는 자존감이 없다 못해 자기혐오가 있다보니 정서적 학대라는 컨셉 자체가 너무나 생소하게 들렸다. 육체적인 학대야 기사를 통해 그리고 동네 소문을 통해 퍼다하게 알려진다지만 몸에 손을 한번도 안 대고도 학대를 하는게 과연 가능한가? 이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뭔가 내가 소통을 함에 있어 잘못 전달하고 오해의 소지를 제공했기에 나르시시스트들이 그런것이 아닐까 그렇게 합리화를 하면서 내 자신에 탓을 돌린셈이다.


게다가 불과 몇주전까지만 해도 나르시시스트들에게 그들의 가족이나 애인들이 고통 받는 이유는 그들의 철저한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고 그것을 뒤따르는 무관심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예 관심을 주지 않고 방치해두는것과 상대방을 따라다니면서 집요하게 괴롭히는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르시시스트적인 학대가 방관에 가깝다고 생각했으니 정서적 학대의 선상에 있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삶에 너무나도 극명하게 엄마는 나를 피를 말려죽일 사람이라는걸 확실히 보여주는 기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기억을 살려내지 못한거다.


나는 분명히 나르시시스트적 학대의 피해자이다. 엄마는 매 한번 들지 않았지만 엄마는 마치 나를 파블로프의 개처럼 “고전적 조건형성”을 한거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이것이 반의도적이기도 하다. 엄마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고 나를 마치 사람이 아닌것처럼 방관을 하기도 했지만 딱 그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나를 질투했다. 나르시시스트적 학대의 중심에는 질투라는것이 존재한다. 질투가 병적이면 사람은 집요해지고 정말 사람을 피를 말려 죽일때까지 자기가 원하는것을 얻으려 한다. 이것이 고문이고 학대 아닌가. 그 질투에 계속 노출되면서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엄마가 뿜어 내는 그 질투에 계속 나를 방어하는 법을 익힌거다.


유아기 아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며 자라면서 보호자가 해주는 보살핌으로 인해 얻는 감정들이 어느것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유대 관계로 인한 안정감일 수도 있고 불쾌감 해소도 있겠고 그리고 즐거움을 배운다. “놀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부모의 보살핌 아래에서 실컷 할 수 있는 자격을 자동으로 획득하는거다. 나는 부모의 사랑하는 자식이니까 말이다.


근데 나는 그 놀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아주 어린 나이부터 차단 당했다. 내가 기억하기도 훨씬 이전 부터 엄마는 경제 부흥에 이제 먹고 살만해졌다는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자기의 자식을보면서 전쟁 후 몇년 있다 태어난 자신과 너무나 극명히 대비됨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것이다. 자기가 어렸을적 부모에게 당한 서러움과 없이 사는 집에 태어난 죄로 고작 8살 나이에 자기가 업어 키워야 했던 자신의 어린 동생 그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해주면서 궁핍한 집안에서 어린 아이의 몸으로 떠 맡아야 했던 육아의 끔찍함이 머리에 아주 생생히 각인 됐을것이다. 갓난 아이인 내가 자지러지게 울어댈때마다 그 과거의 끔찍한 경험이 되살아 났을꺼고 그녀 자체의 인격이 정상 궤도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 알 수 없는 갑갑함 뿐만이 아니라 분노 같은것에 휩싸였을것이다.


내 엄마의 입장에선 어린 아이인 내가 아이로써 누리는것들이 자신의 유년 시절에 비해선 터무니 없이 과하다고 생각했을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기억나는 유치원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아동복 장사를 하는 엄마가 들여 오는 물건을 하루 입다가 엄마가 그걸 다시 세탁을 해서 파는 식으로 옷을 입었기에 옷장에 딱히 내 꼬까옷이라고 하며 애지중지하며 아낄만한 옷이 없었고 장난감 또한 이모나 삼촌이 선물해주지 않는 이상 엄마가 아는 쥬스대리점을 하는 집 아들 둘의 남자애들 장난감을 얻어서 노는 바람에 맨날 조립 방식 책자가 없는 레고 꾸러미를 들고 씨름을 했었다. 아이가 별 흥미도 못느낄 방판 동화책 세트는 그 ‘없는’ 살림에 할부로 해주었지만 놀만한 장난감은 한번도 엄마가 제돈을 주고 사준적이 없다. 솔직히 이 부분까지는 그냥 엄마가 무심한거 아니냐, 질투가 어디 있냐 할것이다. 나도 딱 이부분까지만 기억이 났으니까 말이다.


엄마의 질투가 어린 나에게 향했던 때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었을꺼다. 호주에서 살던 이모가 사촌 동생 두명을 잠시 데려온적이 있다. 그때 내 남자 사촌동생은 아주 어린 나이에 닌텐도 게임보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마냥 신기해 보였다. 내 또래 남자아이들도 애지중지 해서 선생님한테 뺏길까봐 학교에 잘 안 들고 오는 게임보이를 고작 6살 된 아이가 들고 다닌다는게 엄청나게 컬쳐쇼크였달까. 평생 게임 콘솔 근처에도 안 가본 나니까 그럴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마도 거기에 눈독을 들였다. 이때 엄마의 나이는 40초반이었다. 어른이 게임을 하는게 유치하다는게 아니다. 11살 아이와 40대 초반의 어른을 놓고 볼때 누구에게 게임기가 더 절실하겠는가?


근데 엄마는 자기가 항상 더 절실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인 나를 견제를 했다. 게임기 하나를 가지고 말이다. 항상 돈타령을 해대며 자신의 삶이 팍팍하다면서 6살 된 아이도 가지고 있는 게임보이를 제돈을 주고 살만한 형편은 안 되었나 보다. 그래서 사촌이 잘때 그걸 항상 붙잡고 있었다. 애기가 나들이를 가기라도 하면 일부러 숨겨놨다가 가게에 가지고 와서 하더라. 게다가 내가 만약에 그걸 한판이라도 하는 상황이 오면 계속 내 주위를 맴돌면서 내가 얼른 죽기만을 기다렸다. 운 좋게 슈퍼마리오 단계를 깨고 길게 게임을 해도 내 주위에서 어물쩡 거리면서 무언의 압박을 주는 엄마가 항상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 게임을 하면서도 맘이 편하지 않았다. “언젠가 자기가 못 참으면 분노를 뿜어대면서 게임기를 내 손에서 낚아채가겠지..” 라는 생각에 놀면서 즐거워야 할 시간이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시간인거 같았다. 그래서 한판만 한판만 칭얼대면서 시간을 벌 수도 있었는데도 내가 알아서 대중 죽고 게임기를 자진납세를 했다.


이는 한 1-2년후 우리가 호주로 이민을 가서도 지속되었다. 그 사이에 내 사촌은 학교에 가게 되었고 일도 안 하고 집에 있던 엄마는 내 사촌 게임기에 무한정 손을 댈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때는 랭귀지 스쿨 등록 이전이라 마냥 엄마가 집안일 하면서 그렇게 게임기 들고 시간 때우는걸 마냥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개월 동안 엄마는 사촌이 가지고 있는 아케이드 게임을 두서너개 다 끝냈지만 나는 어깨너머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도 솔직히 잘 모른다. 아직도 난 닌텐도 마리오 같은 아케이드 게임 할랑치면 가슴이 미칠듯 뛰고 공포심에 몇분 못하다가 결국 내려놓는다.


이때는 사촌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게임보이를 차지하면 엄마는 그 어린아이에게 자기 자신이 칭얼거리면서 파워 레인져 테이프를 틀어 줄테니 게임기를 자기한테 주어라 온갖애교를 떨었고 사촌이 몇 레벨까지 깼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12살 내눈엔 이게 우스운 수준이 아니라 섬뜩했다. 저게 나였다면 나를 저렇게 붙잡고 게임기를 뱉어 낼때까지 온갖수를 다 쓸텐데. 차라리 게임보이 주인이 아니니 나는 게임 하겠다고 욕심만 안 부리면 저런 더러운 꼴은 안 당하고 살 수 있겠다 싶어 더더욱 게임을 안 한것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게임을 아예 안 한건 아니다. 그런데 집에서 엄마 눈 앞에서는 못하겠더라. 컴퓨터학원에 밤늦게까지 숨어서 학원 컴퓨터를 잡고 게임을 할 수는 있어도 엄마 가게에 딸린 방에 설치되어 있는 내 컴퓨터에선 차마 게임을 못했다. 엄마는 가게 전화 못 받으니까 나보고 인터넷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꼭 컴퓨터는 가게 안에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가 할부로 큰 돈주고 산거니 내가 어떻게 이걸 사용하나 감시해야겠다는거다. 그래서 그 비싼 컴퓨터를 얼마 사용도 못했다. 엄마 눈치 때문이다.


이런 때에 엄마가 나에게 항상 하던 잔소리는 그냥 여느 일반 가정에서 애들이 들을 법한 잔소리였다. ‘집에 일찍와라. 학원 열심히 다녀라. 숙제 좀 바로 해라…등등’ 허나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말 원도 한도 없이 기분 찢어지게 놀고 그게 너무 심하니까 엄마가 집에 들어오라 제촉을 하는것이고 나무라는것이지 나 같은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아예 없던거나 마찬가지이다. 되리어 부모가 나가서 놀라고 부추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른이 애한테 하는 잔소리가 다 애 잘되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애 입장에서 그게 맞는 말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안 그러면 사람 흉내내는 내 엄마 같은 앵무새 밖에 안 되는거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엄마는 끝끝내 나를 사람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었다. 놀려고 하면 겁부터 나고, 짜투리 시간이 나면 뭔가 생산적인 일부터 하려고 들고, 휴가를 내면 일주일도 못견뎌 지옥같은 느낌이 들고, 놀이를 즐길줄 몰라 나가서 하는것이라고는 고작 식당에 쳐박혀서 친구들이랑 술마시는것 뿐. 엄마에겐 내가 즐거움을 느끼고 놀면서 행복한것이 사치라고 느꼈기에 의도를 안 했던간에 나를 보며 느꼈던 그 형언 할 수 없는 분노 (외동딸로 좋은 시대에 태어난 나에 대한 질투)에 대한 목적을 달성한거다. 그 개같은 짓거리로 인해 나는 33년 삶동안 뭘 하나 100퍼센트 즐거움을 만끽하며 놀아 본적이 없으며 내가 소유한 모든것을 사고도 즐겨본적이 없고 숨겨두기에만 급급하고 그렇게 지옥속에 고립되면서 살았다. 자기 자신도 계획하지 않은 그 무의식속의 질투덕에 나 또한 그걸 다시 부셔버리려고 혼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게 정서적 학대가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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